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2세 (문단 편집) == 사망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ath_of_William_Rufus.jpg|width=400]]|| ||윌리엄 2세의 죽음. 알퐁스 드 뇌빌 作. 1895년 || 1100년 8월 2일, 윌리엄 2세는 브로켄허스트 근처의 숲에서 죽었다. 그는 상당히 특이하게 죽었는데 숲속에서 사냥하던 중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에 가슴을 꿰뚫려서 죽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날아온 화살이 가슴에 박혔고, 그 충격으로 낙마하면서 가슴에 박혔던 화살이 지면에 부딪히면서 화살이 더욱 깊숙이 박히게 된 것이다.] 다만 누가 어떻게 그를 죽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때 그는 동생 헨리 및 귀족들을 대동하고 있었으나, 같이 있던 귀족들은 그의 시체를 수습도 안 하고 현장에 버려두고 가버렸으며 그의 시신은 나중에 한 농부가 발견했다. 게다가 동생 헨리는 형에게로 달려가기는 커녕, 권좌와 왕궁의 보물을 확보하기 위해 잽싸게 윈체스터로 달려 갔다.[* 사실 헨리의 입장에서는 서둘러 권좌를 확보해야 했다. 윌리엄 외에도 그 위로는 노르망디 공인 큰형 로베르가 있었고, 윌리엄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로베르 역시 잉글랜드 왕위를 노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만 로베르는 당시에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고 있었고 거리가 멀어서 빠른 대처가 어려웠다. 나중에 윌리엄의 부고를 듣고 로베르는 잉글랜드로 돌아왔으나 헨리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격분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잉글랜드 왕위를 두고 헨리와 대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헨리의 재빠른 권좌 확보는 주효했던 셈이다.] 그리고 런던으로서 가서 며칠 후에 대관식을 올려버렸다. 윌리엄 2세를 누가 죽였는지는 당대에도 [[미스터리]]였고 현재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역사가들은 단순히 사고였을 수 있다는 의견, 동생인 헨리가 연관되어 있다는 의견, 헨리는 아니라는 의견 등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지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다. 그는 군사적인 면에서는 뛰어났지만 통치가 거칠었고 폭정을 저질렀기에 모두가 증오하고 무서워하는 왕이었다. 특히 그의 치세에 일어난 잦은 원정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전비 부담이 증가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기에 귀족들은 물론 백성들에게도 증오를 받았다. 당연히 그가 죽었을 때도 잉글랜드에서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대의 사후평가 또한 전쟁 잘하는 군인일 뿐 품위나 위엄과는 거리가 먼 자로 묘사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질서와 정의를 확립하고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에 평화를 지킨 것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프랑스가 빼앗은 노르망디 영토의 메인을 되찾은 것 또한 치적으로 평가받았다. 윌리엄 2세가 쓰러졌다고 알려져 있는 장소에는 루푸스 스톤이라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